내 이름 아시죠 (출애굽기 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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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33:12, 새번역]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 저에게 이 백성을 저 땅으로 이끌고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누구를 저와 함께 보내실지는 저에게 일러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저를 이름으로 불러 주실 만큼 저를 잘 아시며, 저에게 큰 은총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이를 먹고, 고향을 떠나 살다보면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는걸 알게 됩니다.
목사라는 칭호를 붙이거나, 행정적인 필요에 의해 아무개씨 라고 불러주는 이름 정도입니다.

그런데 가끔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와 형 그리고 친구들입니다.
그만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각별한 사이이며 허물없는 사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기도하고, 아빠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장으로서의 위치와 호칭은 너무 좋고 감사하지만 그만큼 책임도 따르는 호칭이죠.

그런데 이름은 저를 존재 그자체입니다. 거기에는 어떤 사회적 위치도 책임도 의무도 없습니다.
그저 너와 나라는 관계, 서로의 존재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에서는 이렇게 시인은 노래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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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는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름을 불러주셨다고 말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름을 부를 실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를 대하실 때 존재 그 자체로 대해주십니다. 직장의 직위로, 교회의 직분으로, 아무개의 자녀, 부모로 대하시지 않으십니다.

오늘의 본문 출애굽기 32장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진으로 돌아가도, 눈의 아들이며 모세의 젊은 부관인 여호수아는 장막을 떠나지 않았다.

[출33:11, 새번역]

가장 서로에대한 책임이나 부담이 없는 대상이 ‘친구’가 아닐까요? 정말로 내 이름으로 나를 대할 수 있는 상대는 친구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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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세에게 막중한 지위를 맡기셨지만, 그 둘의 관계는 ‘너와 나’ 그것 뿐이지 않았을까요?
모세야~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 그 둘의 관계가 너무 부럽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는 그저 ‘너와 나’였을것 같습니다

아마 하나님도 저에게 ‘제목사야~’ 라고 부르시기 보다는 ‘주경아~’이렇게 불러주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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