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12, 새번역]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출애굽 후 40년의 시간이 지나 가데스 신광야에 이릅니다.
여기에서 신광야는 출애굽기 17장의 신광야와는 다른 곳입니다. 그곳은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이었고
가데스의 신광야는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 중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이 가까이 왔지만 출애굽 1세대는 이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20장에서 1절은 미리암이 죽고, 후반부에는 아론이 죽습니다.
그런데 이곳 20장의 가데스 신광야의 사건은 모세와 아론이 가나안땅으로 결국 들어가지 못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신광야에 이르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어 다시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해가 안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광야라는 곳에서 물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죠. 당장 보이지 않는 물은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불평보다는 기도를 먼저해야 했습니다. 모세에게 중보를 부탁하며 물을 주시길 바라야 했습니다.
백성들의 불평을 들은 모세는 다시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팡이를 잡아라. 너와 너의 형 아론은 회중을 불러모아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 바위에게 명령하여라. 그러면 그 바위가 그 속에 있는 물을 밖으로 흘릴 것이다. 너는 바위에서 물을 내어, 회중과 그들의 가축 떼가 마시게 하여라.”
[민수기 20:8, 새번역]
그런데 모세는 바위에게 명령하라는 말씀을 어기고, 그의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치게 됩니다.
물은 나왔지만 이 일로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땅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정작 본인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니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을까요?
그런데 이 일은 무덤덤(?)하리 만치 지나갑니다.
하나님께 좀 따지고 애원할 만도 하지 않을까요?
이 사건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가나안에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쇠한 모세보다는 함께 나가 싸우고 가나안땅을 정복할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이 사건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개입으로 리더십의 교체를 일러줍니다.
아마도 모세 자신도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론 역시 자신의 생명이 다 되어감을 알고 있었지 않았을까요?
두번째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던 아론의 아들이며 제사장이었던 나납과 아비후는 그 자리에 즉사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책임지는 자리의 무게는 막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사건으로 그들을 완전히 내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론의 죽음과 장례는 매우 존귀하고 엄숙하게 치러졌습니다. 백성들도 30일간을 애곡했습니다.
때론 더 큰일을 하고 싶고, 더 많은 걸 이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물러나야 할때가 있고, 자신에게만 주어진 사명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네가 이제 큰일을 찾고 있느냐? 그만 두어라. 이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내릴 터인데 너만은 내가 보호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목숨만은 건져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예레미야 45:5, 새번역]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또 다른 하나님의 배려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섭섭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이며, 섭리일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자주 느끼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어진 사역 속에서 감사해야겠습니다.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큰그림 속에 나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